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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중국인은 왜 대림동에 몰려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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发表于 2020-5-29 12:40:15 | 显示全部楼层 |阅读模式
조선족·중국인은 왜 대림동에 몰려들까?!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서면 보고 들리는 것이 달라진다. 휴대폰으로 목청 높여 통화하는 젊은이는 중국말을 쓴다. 간판엔 중국식 간자체가 보이고, 용어도 중국식이다. 좌판에서 파는 간식은 해바라기씨와 호박씨이고, 빵집에선 중국식 호떡과 꽃빵, 튀긴 꽈배기를 판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어느새 작은 중국이 됐고, 우리 이웃이 된 중국인들이 골목골목 살고 있다.


대림동 일대는 작은 중국이 됐다.

대림동

대림동

대림동에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들이 몰려든 것은 대략 20여 년 전부터다. 가리봉동 일대 쪽방촌에 살던 이들이 그 동네가 개발되면서 시나브로 대림동으로 이동했다. 처음 800명 정도이던 중국 출신 거주자들은 이제 대림동에만 2만여 명이 산다고 한다. 이 지역을 선호하는 이유는 첫째가 일자리고, 둘째는 주거비, 셋째로 편리한 교통을 꼽는다.

대림동은 아직도 2~3층의 오래된 주택이 많고 대부분은 집 전체의 방을 나누어 세를 놓고 있다. 처음에는 반지하방과 옥탑으로 이사했다가 점점 조선족과 중국인이 집과 동네 전체에 스며들었다. 그들을 위해 가게가 열리고, 이제는 모두 중국식 업종이 점령하게 됐다. 덕분에 이 동네 부동산 시장은 호황이란다. 월세도 점점 올라 싼 방값은 옛말이 됐다. 그럼에도 좋은 조건의 빈방이나 가게 자리는 나오는 즉시 나간단다. 초등학교는 교실마다 학생들로 가득 찬다. 골목길엔 갓난아이를 안은 부부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고, 손잡고 걷는 신혼부부도 자주 보인다. 이 일대의 골목은 살아 있다.


대림동 골목 환전소는 다양한 민원사무도 함께 처리하고 있다.

대림동

대림동

대림역을 나와 골목에 접어들기 전 우선 보게 되는 것은 벽을 가득 메운 구인 광고판이다. 공장부터 농장, 주유소와 도축공장. 20대부터 60대 이후의 일자리까지 일손이 필요한 모든 직종의 직업들이 벽보로 붙어 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의 대자보처럼 ‘인민이여, 와서 일하라’는 외침이 벽마다 빼곡하다. 게시물을 살피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에서 오는 인력이 줄면서 일손은 더 부족해졌단다.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사람 구하는 내용이 많았고, 임금과 근로조건 숙식 제공 여부 등이 상세히 적혀 있다.

비계·철근·거푸집·미장·도배 등 전문직

만남의 광장이라는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대림시장으로 향하는 골목길 어귀에는 환전소들이 여러 곳 있다. 단순히 환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돈을 보내거나 비자서류를 대행해주고 각종 민원사항도 처리하는 고충 처리 상담소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행정사 사무소와 여행사도 눈에 띄는데 적어놓은 업무 내용에 영주권과 비자갱신은 물론이고 친자확인 광고도 붙어 있다. 나이든 직원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어디나 속고 속이고 얽힌 애정사가 골칫거리 아니냐”며 웃었다.


중국식 간자체 간판이 대부분이다.

직업교육소도 눈에 띄는데 요새 인기 있는 직종은 여자는 간병인, 남자는 건설현장 전문 기능인이라고 했다.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얻는 데도 유리하단다. 이제는 단순 노동직보다 비계(飛階)·철근·거푸집·미장·온수·보일러·도배 등 전문직이 몸값도 비싸고 서로 모셔가려는 추세라고 한다. 서비스 업종은 중국에서 온 인력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대림시장 주변 골목에도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안전화며 작업복을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발에 딱 맞는 안전화를 고르려고 하자 동료 세 명이 나서서 그를 말렸다. 노련해 보이는 50대 노동자는 “신발은 한 치수 큰 걸 신어야 한다. 현장에서 조금 지나면 발이 부어서 일 못 한다”며 신발을 골라주고 있었다. 그에게 분위기를 묻자 “요즘 남자들은 건설현장 일이 많다. 기술 있으면 돈도 더 벌어 좋고, 아는 사람들끼리 팀을 만들어 현장에 같이 들어가면 의지도 되고 작업도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연고가 없으면 인근 남구로역 5번 출구 새벽 인력시장으로 가서 일당 일을 구할 수도 있고, 자신처럼 10여 년 이상 현장을 떠돌면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여러 군데서 온다고 했다. 건설현장에 “요즘 조선족하고 중국 사람 없이는 일 못 한다”고 장담했다.

대림시장은 전통시장임에도 보기 드물게 붐비고 번창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시장골목을 가득 메우고,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가 활기찼다. 시장 초입에 채소를 파는 오래된 좌판과 드문드문 퍼진 마른버짐처럼 내국인 가게가 있을 뿐, 상점 대부분은 한족과 조선족이 지배한 지 오래다.


대림동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골목 중 하나이다.

파는 물건들도 국내시장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이다. 돼지 꼬리부터 삶은 돼지코, 오리 튀김과 개고기 수육. 옌볜식 순대와 쓰촨식 채소절임. 어느 것 하나 흔한 물건들이 아니다. 주인과 손님은 태연히 중국말로 대화하고 있다. 채소가게에서 파는 오이는 짧고 뚱뚱한 모양이다. 값은 하나에 1500원을 달라고 한다. 국산 오이의 두 배 이상이나 비싼 값이다. 주인은 “이게 중국 오이인데 껍질이 얇고 맛있다. 그냥 먹어도 좋고, 채로 무쳐먹어도 맛있다”고 강조한다. 한 입 베어 먹어보니 우리 입맛엔 우리 오이가 맛있다. 그 옆에는 색깔도 옅고 모양도 제멋대로인 중국 참외를 함께 팔고 있다.


돈벌이 좋고 살기도 좋은 ‘작은 중국’

가게 주인에게 언제 왔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국적자다. 온 지 20년 됐고, 일가친척이 다 와서 이제는 여기가 고향이다”라고 했다. 국적자란 귀화해서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란다. 대림동 주민 중 대한민국 국적자의 절반 정도가 그처럼 귀화한 사람이라고 한다. 가게 주인은 자신이 떠나온 중국 지린성 시골마을보다 여기가 돈 벌기도 좋고, 살기도 불편이 없으니 아예 옮겨왔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도 한 채 마련했고, 장사는 나날이 잘돼서 옮겨오길 잘했다고 이야기한다.


식품점에서 파는 식자재 대부분은 중국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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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楼主| 发表于 2020-5-29 12:41:32 | 显示全部楼层
시장 한편 길 위에 크게 사람 얼굴을 그려놓은 간판에 눈길이 갔다. 좌판 의자에 앉은 노인에게 묻자 “얼굴에 난 점과 주근깨 사마귀를 감쪽같이 빼준다”고 설명한다. 지금 뺄 수 있느냐고 하니 노인도 좌판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실력이 좋다는 부추김에 간판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얼굴 곳곳의 혈자리와 그곳의 점이 어쩌면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단다. 시장골목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오가는 이들의 정경은 이곳이 지린성이나 헤이룽장성 혹은 옌볜의 장터거리라 해도 믿을 만했다.

시장통으로 이어진 샛골목엔 다세대 주택들이 어깨를 이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다가 소리를 지르며 시장통으로 뛰어간다. 아이들의 엄마는 살살 뛰라고 고함치다가 옆 가게 주인과 극성스러운 아이들 흉을 보며 웃는다. 흔히 1970년대 서울의 골목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대림동에는 아직도 살아 있다.

갓난아이를 안고 3대가 함께 시장을 걷던 가족 중 할아버지가 저녁엔 냉면을 먹자고 했다. 국수가게 앞에서 그들이 고른 것은 옥수숫가루로 만든 노란 냉면국수. 옌볜에서 왔다는 국수공장 사장은 서너 명의 직원들과 함께 부지런히 면을 뽑아내고 있다. 면 다발을 담던 주인이 “면은 옥수수 냉면이 진짜 시원하고 맛있다. 한국 냉면은 별맛이 없다”고 설명한다.

만두와 칼국수 가락을 파는 식당은 주방장부터 종업원 모두가 일가족이라고 했다. 식당 테이블에서 만두피와 속을 열심히 빚는데 한눈에도 그 양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많아 보여도 다 팔린다. 일일이 손으로 빚어서 맛있다”며 권해준 음식은 수제 물만두였다. 대부분의 가게는 만둣가게처럼 가족 단위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진 가업으로 장사하는 형태가 대림동에선 흔한 모습이다. 시장사람 대부분은 10년 이상 이곳에 뿌리를 내려 활착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보다 수완도 좋고 적응도 빨랐던 영민한 사람들이다.

시장골목을 벗어나면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곧장 난 골목길과 만나게 되는데, 이 거리가 대림동의 중심인 셈이다. 곳곳에 중국식 카페인 커피호프집이 눈에 띄고 유난히 많은 노래방을 볼 수 있다. 마작을 치는 마작방도 대림동이나 구로구 일대에서나 볼 수 있는 오락실이다. 거리의 과일상도 용과와 망고, 더불어 두리안을 쌓아두고 팔고 있다.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과일들이다. 젊은이들은 무엇인가에 화가 나 있고, 신혼부부는 깨가 쏟아지며 아이를 앞세운 부인은 흐뭇한 표정이다. 한낮 이렇게 골목길을 꽉 메운 인파를 보기는 근래 들어 대림동이 처음이다.

만둣가게·커피호프집·마작방 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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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楼主| 发表于 2020-5-29 12:43:39 | 显示全部楼层
골목에 사람이 많다 보니 어딘가 수심 깊은 모습도 보인다. 한가한 빵집 주인은 북적거리는 옆 가게를 부럽게 바라본다. 그 앞쪽 좌판에 담뱃잎 가루를 놓고 가치담배를 말아서 파는 중년의 상인이나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받아 든 초로의 사내도 대림동의 활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트 안에선 소주 한 병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며 아쉽고 서러운 표정을 짓는 깡마른 남자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연인지 그는 불편한 한쪽 다리를 끌고 주류 판매대 근처를 유령처럼 맴돌았다. 빠르게 중국말로 응답하는 계산원은 피곤하고 지친 표정이다. 골목에서 파는 튀긴 메뚜기처럼 꼼짝달싹 못 하고 자본 앞에서 무력한 운명을 경험하는 이들도 대림동 골목길을 걷는다.

구로동 일대와 대림동 지역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영화 <아저씨>의 통나무 장수와 마약공장이며 개미굴이 있는 곳으로, <범죄도시>에서 장첸이 범죄조직으로 공포를 휘두르는 동네로 대중들을 만났다. 대낮에도 칼부림이 나고 해가 지면 으레 패싸움이 흔한 지역으로 깊은 오해를 샀다. 하지만 대림동 골목은 평화롭다. 활기차고 어린아이들이 예쁘게 자라며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간다. 말투와 국적을 제거하면 모두 우리의 모습이다.

바람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발이 있으니 인간의 발걸음은 어디든 가서 닿을 수 있다. 시류를 타고 사람도 뿌리를 옮겨 정들면 고향이고, 마음 주면 사랑인 것이다. 20년 전 침체된 주택가로 기울어가는 달의 운명을 따르던 대림동은 작은 중국으로 다시 활기를 얻었다. 우리 옆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이웃 마을이다. 얄궂은 바이러스 하나에 세상의 국경이 거의 닫혀버린 오늘 대림동에서 중국 본토 맛의 훠궈 한 그릇을 해치우고, 돌아오는 길에 동북식 순대 한 줄을 사 오는 것도 즐거운 행보이다. 대림동에 가면 살아 있는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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